2012. 07. 12 [뉴스천지/문화사색] 서울 신청사 관련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이수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
종묘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일단 그 공간에 들어서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서울 도심의 고층빌딩을 구경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종묘 전체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깥세상의 소음과 인간 삶의 갖가지 만상들을 잠시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조선 역대 왕들의 신위가 모셔진 정전과 영녕전 영역은 지난 600년간 본래 의도했던 대로 정적이면서도 엄숙한 공간분위기를 간직할 수 있었고, 수없이 많은 세월을 거쳤으면서도 그 느낌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문화재가 놓여있는 환경과 주변을 둘러싼 공간을 우리는 ‘경관’이라 부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문화재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재 주변의 물리적 요소와 정서적 분위기를 경관이라 한다. 즉, 문화재 주변의 조경, 다른 건물과의 시각적 상관관계, 때로는 풍수지리 원칙에 입각한 자연과 건물의 의도적인 배치나 의미까지 매우 포괄적인 요소들이 경관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관은 문화재 자체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문화재를 감상하고 경험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어야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문화재를 보존하는 행위의 대상은 문화재이지만, 보존행위의 주체와 목적은 사람이다. 문화재를 통해 우리는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때문에 문화재를 올바르게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경관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화재는 경관을 함께 보존해야 문화유산의 ‘완전성’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종묘의 경관보존에 있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종묘 앞에 조성된 공원이다. 종묘 밖으로 나와 그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종묘가 우리의 가슴 속에 채워 준 조상의 숭고한 마음과 고귀한 의도를 금방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 앞에 흐르는 물줄기를 다른 쪽으로 옮겨도 세계유산에 등재할 수 있다는 오보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보도를 보면, 아직도 문화재의 주변경관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와 몇 천년동안 동고동락해 온 물줄기를 다른 쪽으로 옮기면, 암각화 석조 표면의 물리적 훼손을 막는 데에는 약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암각화를 찾아가는 우리 세대와 후손들이 느끼게 될 감흥은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는 문화재인 서울시 구청사의 일부를 무분별하게 없애려다가 국민의 차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던 신청사의 신축공사이다. 최근에 공사용 가림막을 걷어내고 공개된 거대한 규모의 신청사는 구청사의 역사적 가치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구청사 주변에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이질적인 경관을 만들어 냈다. 신청사의 디자인이나 현대식 재료의 사용, 건물의 크기가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후손들은 구청사의 역사적 가치를 이전 세대만큼 이해하긴 어렵게 되었다.
문화재가 진정으로 그 완전성을 지켜내려면, 문화재 그 자체에 대한 보존뿐만 아니라 경관도 같이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와 세계유산을 보존․관리하는 국가기관으로서 경관의 개념을 올바르게 정의하고, 거기에 포함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보존이라는 근대적인 행위에 대한 개념과 요소들을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정립해 나가려면 생소하고 모호한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정의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무자들은 문화재 정비계획의 수립과정이나 중장기 보존․관리방안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해당 문화재의 경관적 요소를 평가해 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보존과정에서 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보존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완전성을 보존할 수 있다.
이제 문화재의 경관을 임의대로 바꿔서 후대도 누리고 경험해야 할 역사적 감흥을 우리 세대가 빼앗아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