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2.18 [조선일보/사람人]코너에 유걸선생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칠순... 내 건축의 전성기는 지금이다.

남들 은퇴 나이에 인생의 정점
왜 만날 '신동'만 이야기하나 건축은 인생경험이 곧 자양분 늙으면 나이듦에 대한 이해가 있다… 건축가 수명 길어져야 다양성 생겨

시청 新청사 '쓰나미' 같다고?
파워풀하단 뜻으로 들려 좋네요… 시청 옆으로 눕힌 것에 큰 자부심 안뜰·수직정원·시민라운지… '열린 공간'이 '열린 사회' 만들어

고층빌딩 숲은 재앙이다
한국인들, 타워팰리스 이후에 고층만능주의 함정에 빠졌다 사람보다 부동산 개발이 먼저죠…그 완결판인 용산, 정말 문제다

'한국건축계의 조지 부시'라는 말에 유걸(72)이 웃었다. "조화보다는 개성, 안정보다는 변화를 주장해온 걸 눈치 안 보는 미국인들에 비유한 것 같아요. 사실 조지 부시만큼 직설이지는 못합니다.(웃음)" 자신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서울시청 신(新)청사에 대한 일부의 혹평도 개의치 않았다. "어떤 디자인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반(半), 싫어하는 사람이 반이지요."

유걸은 남들 은퇴할 나이에 인생의 정점을 맞고 있는 남자다. '60대에 뜬 건축가'라고 명명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게 쉰을 넘어서다. 1995년 설계한 발달장애아 교육시설 '밀알학교'가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하면서다. 이어 배재대 국제교류관, 이건창호 사옥, 경부고속철도 천안역사, 인천
세계도시축전기념관 등 유수의 건축물들을 쏟아내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아이아크 건축사무소에서 유걸을 만났다. 사무실 모든 층엔 칸막이가 없었다. 말단사원과 대표가 하나로 이어진 책상에서 함께 작업하고, 프로젝트에 따라 직원들이 자유롭게 자리를 옮겨가며 사용한다. 유걸이 줄곧 주창해온 '열린 공간, 열린 사회'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그의 사무실에서부터 구현되고 있었다.

칠순에 건축하는 게 뭐가 이상해?

―'60대에 뜬 건축가'라고 한다.

"나이 들어 건축하는 걸 이상하게 보는 게 나는 이상하다. 음악에서 '신동' 얘기를 하는데, 신동의 역할만큼이나 머리 흰 사람들 할 일이 많다. 특히 건축처럼 인생의 농축된 경험이 자양분이 되는 분야에서는."

―머리 염색은 안 하시나 보다.

"집사람이 (염색하는 걸) 싫어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원래 머리가 희었는데, 취임식 때 보니 까맣게 염색하고 나오셨더라. 집사람이 그 검정머리에 화가 나서 대통령께 편지를 썼다. 흰머리를 까맣게 물들이니 위엄이 없어 보인다고.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지나니까 대통령 머리가 다시 하얘졌더라.(웃음) 나이 듦 자체로 멋이 있는 건데, 우리 사회에 노인의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옥의 처마 모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서울시청사 모양이 '쓰나미 같다'는 사람들이 있다.

"쓰나미란 표현은 처음이다.(웃음) 역동적이고 파워풀하다는 뜻으로 들려 나쁘지 않다."

―새 청사가 타워 형태가 아니라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시청을 옆으로 눕혔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층화 맹신'을 거부하고 싶었다. 상류층 주거집단인 '타워팰리스'가 올라간 이후 한국인들은 고층만능주의의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좁은 땅덩어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사막이나 평야에 지어진 도시에는 랜드마크의 역할로 고층 건물이 필요하지만, 70%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고층건물은 푯대 기능을 하지 못한다. 두바이에서 150층 빌딩을 지으니 우리도 따라 짓는 식이다. 그 안에서 살 사람들보다 부동산 개발이 1차 목적이다. 맹목적 고층화의 완결판이 용산국제업무단지다. 나는 이걸 재앙으로 본다. 고층건물은 수직의 막다른 골목이다. 들어왔던 문 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

―시청 설계의 첫 생각은 무엇이었나.

"시청이 광장처럼 '열린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 사람들이 새 청사에 들어와 제일 먼저 만나는 공간이 아트리움(안뜰)과 수직정원이다. 광장의 잔디가 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느낌으로, 1층부터 7층까지 2000㎡ 벽면에 10만본의 식물을 심는다. 정원의 꼭대기에 둥그런 공간이 세 개 떠 있다. 콘서트홀·회의실 등으로 쓰일 다목적홀, 전망대인 하늘정원, 이 둘을 잇는 시민라운지다. 건물의 꼭대기까지 시민들 발길이 미칠 수 있게 하자는 게 설계의 기본 생각이었다."

―구(舊)청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있다.

"나는 구청사는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대건축의 가치나 아름다움이 거의 없는 건물이다. 보전해야 한다니 전면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변형했다. 그리고 나는 '조화'라는 말보다 '차별화'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둘이 같이 있어야 한다면, 따로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는 게 더 좋다. 한옥마을이라고 해서 한옥으로 꽉 채워졌다고 생각해봐라. 한옥이 있으면 양옥도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르게 만들어진 것들을 어떻게 연결시켜주는가가 중요하다."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 때는 반대하셨다.

"조선총독부는 극악한 위치가 문제였지, 건물 자체는 건축적으로 아름답고 가치가 있었다."

―공사비가 100억원 이상 드는 공공건축물의 경우 건축가는 설계만 맡고 시공 과정에는 참여할 수 없는 이른바 '턴키제도'가 적용된다. 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셨다.

"설계자로서 건축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시청에 편지를 썼다. 공정이 절반쯤 이뤄진 상태에서 받아들여졌다. 무산됐다면 설계자에서 내 이름을 빼라고 할 생각이었다. 우리의 현상설계라는 건 건축가에게 투시도를 하나 얻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설계도면은 공정 과정에서 계속 발전하고 숙성된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처럼. 첫 아이디어, 콘셉트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생기기도 하고 더 좋은 대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김수근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1세대 서양화가였던 유형목 선생이 부친이다.

"조소(彫塑)를 하다가 아버지처럼 배고프게 살까 봐 건축으로 돌렸다. 건축도 돈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웃음)"
‘열린 공간이 열린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을 구현한 유걸의 건축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시청, 인천세계도시축전기념관, 밀알학교, 대덕교회. /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아이아크 제공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 건축의 전설'로 불리는 김수근(1931 ~1986) 선생 사무실에서 일했다.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살아계셨다면 60대에 상당히 다른 걸 하셨을 가능성이 있다. (양대산맥이었던) 김중업 선생이 주위 환경, 여건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김수근 선생은 환경이 나빠도 그걸 바꿔가면서 일관적인 퍼포먼스를 해온 분이다. 그분이 일필휘지하는 스타일로 보이지만 내 눈에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많이 억누르는 분이었다. 그 속에 잠재돼 있는 걸 자유롭게 내놓았다면 한국 건축에 더 많은 걸작들이 나왔을 거다."

―한국 건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일명 '김수근 사단'이었다.

"나는 김수근 선생을 존경하지만, 그분 건축을 좋아하진 않는다. 한국의 일반적인 문화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선생이 공간을 풀어가는 해법은 배타적이고 특정적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아트리움, 다목적 홀 같은 공용공간에 집착하는가.

"나는 동창회라는 말이 싫다. 끼리끼리 똘똘 뭉치는 거 말이다. 공간을 칸막이로 막는 것도 비슷하다. '지속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건축에서는 공간을 재생해서 쓰는 게 지속성의 1차 요건이다. 한옥만 해도 안방에서 놀기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잤다. 지금의 우리 주거 모양은 완전히 별개로 분리돼 있다. 방과 방을 트고 싶어도 구조벽으로 막아놔서 그걸 헐면 집이 무너진다. 가족의 생애주기가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아이들이 독립하면 자녀들 침실은 다 창고가 된다. 어댑터블(adaptable)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침실 같은 사적 공간은 필요하지 않나.

"최소화한다. 천장은 2.7m밖에 안 되는데 커다란 침실을 5개씩 만들어놓은 아파트를 보면 싸구려를 뻥튀기한 기분이 든다. 사는 모양이 12평짜리 임대아파트와 다를 게 없다. 나더러 150㎡ 되는 아파트를 설계하라고 하면, 100㎡는 요리하고 밥 먹고 함께 노는 공용공간으로 만들 거다. 침실은 아주 작게 만들고, 벽은 반쯤 열어놓고. 공용공간이 작다는 건 가족이 공유하는 삶이 없다는 증거다."

―가족 간에도 프라이버시가 있다.

"프라이버시(privacy)는 시큐리티(security)가 아니다. 아이가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는 것은 프라이버시가 아니라 고립이다. 문이 열려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게 프라이버시다. 광장에서 누가 책을 읽고 있으니 그 옆을 조용히 지나가주는 게 프라이버시다. 그게 함께 사는 기술이다."

―집 지을 때 부동산 가치는 별로 생각하지 않나 보다.

"스물여덟 살 때 서울 정릉에 친구와 함께 융자를 받아 신혼집을 지었다. 화제가 됐던 '땅콩집'처럼 두 집을 이어 붙였다. 방은 부부침실 하나뿐이고 문도 없다. 층간을 모두 뚫어서 공용공간으로 쓰니 친구들이 매일 놀러 왔다. 물론 부동산적 가치는 낮았다. 그 집을 짓자마자 김신조 사건이 나서 정릉 부동산값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집을 사고 싶어하는 예비부부들은 많았는데 부모님들이 반대하더라. '방이 몇 개냐', '불란서식이냐 이태리식이냐'는 질문에 답을 못 드렸기 때문이다.(웃음) 그 두 가지가 지금까지도 한국 건축의 판단 기준이다."

건축가는 群舞의 동선을 계획하는 안무가

―김수근건축상, 대한민국건축가상을 수상한 '밀알학교'로 유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공간에서 교실보다 중요한 게 마당(운동장)이다. 하지만 서울엔 땅이 없으니 학교 안에 인조마당을 만들었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뛰어놀 수 있는 마당, 각층으로 연결된 마당을 위해 아트리움을 앉히고 지붕을 씌웠다. 마당에서는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한다. 아이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그 마당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내부에 골조나 기둥이 없고 돔 형태로 앉힌 아트리움이 지하 1층부터 옥상까지 뚫려 있다. '밀알학교', '배재대 국제교류관'도 비슷하다. 자연채광·자연환기·열차단을 고려한 친환경건축물로 호평받았다.

"나는 여럿이 함께, 따로 또 같이 사용하는 공간의 생명력이 좋다. 건축의 감동은 외관이 아니라 공간 전체가 주는 복합적 감동에 있다. 건축가는 군무(群舞)의 동선을 계획하는 안무가와 같다."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강연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을 직접 만났다던데.

"연구원 건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건축가를 기술자로 대하지 않고, 정의를 가지고 세상과 씨름하는 사람으로 대해줘서 좋았다."

―서울시청사에 7000여개의 외장유리를 붙인다. 유리를 왜 선호하나?

"나는 밝고 시원하고 편한 집이 좋다. 유리와 철은 현대의 산물이다. 벽돌도 좋지만 과거의 재료다. 음악하는 사람이 모두 베토벤을 좋아하지만 교향곡 9번을 계속해서 쓰려고 하진 않는다. 물론 유리는 춥고 뜨거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걸 해결할 수단도 건축가에게 있어야 한다. 환경건축의 선두주자인 독일은 에너지가 전혀 들지 않게 하려고 완전 유리건물을 짓는다. 한국 건축은 좀 더 가벼워져야 한다."

익명의 정치인, 익명의 건축가

―서민들에게 건축가가 지은 집은 일종의 '예술'이다. 하늘의 별 따기다.

"건축은 실용이다. 특정 계층의 향유물이 아닌데, 예술이란 수식으로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건축이 부유한 사람들의 향유물인 건 맞지 않나.

"모든 사람에게는 꿈이 있다. 의사가 병을 찾듯이 건축가는 사람들의 꿈을 찾아 구현시킨다. 내가 볼 땐 사람들이 그 꿈을 접고 사는 것 같다. 하꼬방처럼 작아도 자기의 꿈이 구현된 집이라면 아름답다. 돈이 많아도 가난하게 사는 부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완전자동시스템의 아파트에서 살기 원한다.

"물질주의다. 바쁘니까 모든 게 갖춰진 호텔 같은 공간에서 살기 원한다. 좋아하는 색으로 벽을 칠할 수도, 맘에 안 드는 가구를 치울 수도 없다. 획일적인 주거환경이 우리의 일상, 교육, 사회 문제로 파생된다."

―두바이
에서 본 건축물을 서울 강남에서 만나기도 한다.

"건축을 형태나 스타일로 받아들이면 자꾸 모방하게 된다. '구찌'를 명품이란 이름, 스타일로 받아들이니 짝퉁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건축과 정치가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의 꿈을 구현시켜준다는 점에서."

―건축가가 본 요즘 정치인의 모습은?

"정체성, 자기 이름이 없다. 집단주의 때문이다. 자기 이름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하는데, 끝까지 싸우지 않고 누가 뭐라고 하면 쑥 들어간다. 신념은 강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덴티티는 허약하다. 우리가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결여돼 있는 게 용기다. 지식은 많고, 문제의 핵심이 뭔지도 안다. 그걸 자기 이름으로 해결하려고 나서는 용기가 없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렇다, 하고 사는 용기가 부족하다."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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