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축학회지 2015년 7월호
특집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비정형 건축물의 설계, 엔지니어링 및 시공'
특집의 첫번째로 '디지털 건축의 미래에 대한 유걸 건축가와의 인터뷰'가 실렸으며
마지막으로 '컴퓨터 기술과 건축'이라는 유걸선생님의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페블&버블, 서울시 신청사, 트라이볼 등 아이아크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들을 시작으로
디지털 건축의 흐름, 건축 전반에 걸친 다양한 변화, 건축산업의 미래, 건축교육의 방향 등 흥미로운 주제들로 이루어진 담론입니다.
아래는 '컴퓨터 기술과 건축' 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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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하는 매사에 극히 비판적인 나의 아내도 내가 만든 선반이나 테이블을 보고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래서 전에는사무실 옆에 작은 목공소나 철공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나는 한 때 집을 직접 지은적이 있다. 흙파기 부터 시작하여 건물의 틀을 만들고 내외부를 마감하고 마지막 부착되는 모든 기구나 장식물 까지 모든 것을 지시 감독하고 또 목공을 비롯해서 많은 것을 직접 만들기도 하였다. 실은 가난한 건축가가 수입을 잡으려 한 일이었지만 일을 하다가는 만드는 재미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것을 보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은 것이었다.
건축을 말하기 위해서 건축가를 말해야 할 때도 있고 건축의 주변 여건을 말해야 할 때도 있고 또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말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은 건축이 이들 모두와 연관되어 있어 서로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속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하나의 건축이 계획되고 그 계획이 실행되어 건축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건축을 말하기 위한 가장 핵심되는 부분이 되겠다. 계획의 과정이 무엇을 만들것이냐에 관심이 집중이 되어있고 이 계획을 건축으로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만들것이냐에 더 관심을 집중한다고 할 때 무엇을 만드느냐 와 그것을 어떻게 만드느냐를 나누어 생각할 수가 없다. 때에 따라서는 어떻게가 무엇보다 더 우선해서 고려되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흔히들 건축의 기술을 건축의 내용에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1970년대 이후 한동안 30여년 전 소위 고등기술(High Tech) 건축이 건축가들의 관심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당시 한국 건축가들이 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DDP)가 그 모습을 나타냈을 때 보여준 태도와 흡사한 점이 있었다. 기술을 단지 형태를 만드는 수단으로 폄하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컴퓨터를 이용한 기술이 건축의 형태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니면 대부분 그런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정형 건축의 형태를 만드는 기술은 형태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고 끝나서는 안된다고 본다. 비정형 건축을 만든 기술은 그 비정형 건축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 하는데까지 이용이 될 수 있다. 나는 송도의 트라이볼(Tri Bowl)이나 아산 정책연구원의 비정형 에이트리움(Atrium)을 만들면서 비정형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경험이 있다. 이것은 건축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경험이다. 비정형 건축의 계획은 그 건축계획의 성격 때문에 건축 부재와 구체적 접합상세까지 계획을 할 수 밖에 없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수행하는 현장은 그 계획을 따를 수밖에 없도록되어 있고 계획을 수행하는 현장에서 시행착오가 생겼을 때 현장은 스스로 이것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수정은 너무나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건축가의 설계는 온전히 존중되고 시공되어 질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비정형 건축의 설계가 갖고 있는 강점은 설계과정에서 어떻게 이 설계가 실행 되어져야 하는지가 다 검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시공과정에서 설계감리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계속 문제를 재기하고 있다. 비정형 건축은 설계의 과정에서 설계가 어떻게 시공이 되어야 하는가가 상세히 검증이 됨으로 현장에서의 우려는 많이 감소가 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건축가가 시공 할 사람을 설계좌정에 참여시킬 수도 있게 된다. 나는 설계자가 시공과정에 참여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자가 설계과정에 참여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발생될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비정형 건축이 제대로 설계 되었을 때에는 실은 누구나 그것을 지을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시공의 경험이 없이도 시공을 관리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요즘 건축가의 입지는 한없이 줄어들고 건축 주변의 관계업무 영역은 계속 확장되는 모양세다. 실은 건축가의 영역은 이미 왜소했었고 그래서 한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건축가의 기여는 별반 찾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것은 시공사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건축주변의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건축가가 해야 할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도시계획가던 시공사던 또는 디자이너든 사람들의 업무영역 삶의 환경을 가치있게 만드는데 기여한 바 있다면 그것이 무슨 업무영역으로부터 나왔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들의 삶의 환경이 왜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 가 하는 문제를 제대로 못 다루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도시 건축은 많은 문제를 해결 못한 체 만들어져 왔다.
기술기반의 건축설계가 건축의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구축하고 구현 시킬지를 돕는 수단인 점은 그 가치의 한 부분이고 실은 그 이상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현대사회가 움직이는 모습이나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의 특징의 하나는 모든 것이 계획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월차별 계획에서 주간계획, 나아가서 일간 및 시간계획까지 모든 것은 계획에 의해서 짜여지고 사람들은 그 짜여진 계획대로 산다. 국가 경제계획을 위시해서 도시계획, 지구단위 계획, 캠퍼스 계획 그리고 건축계획까지 그 규모나 성격의 여부를 떠나 모든 것은 계획되어 실행되는 것이 현대생활의 기본 모습이다. 한데 물리적 계획이던 비 물리적 계획이던 그것이 온전히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은 옳은 것이었는데 하루가 지나니까 맞지 않게 될 수도 있고 해가 지나니 계획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계획은 조만간 틀리게 되어 있다. 도시 계획이 도시 생활을 편하게 하기도 하면서 또 곧 그것이 생활의 제약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획을 버릴 수 없는 현대 생활의 부조리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계획이 짧은 수명을 갖는 이유는 계획의 경직성에 있다. 모든 계획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인데 계획의 경직성에 비해 사람들은 늘 변하고 있으니 결국 변하지 않는 계획은 변한 사람에게 무용한 것이 되고마는 것이다. 파라매트릭 디자인은 계획의 경직성이 만들고 있는 문제의 일부를 개선할 수가 있다. 계획의 조건들이 변했을 때 변한 조건에 대응하는 해법을 내는 계획을 하는 것이다. 계획이 예측할 수 없늠 매개변수가 예측 못했던 어떤 모양으로 나타났을 때 바꿔진 매개변수로 같은 계획이 새로운 해법을 내게 하는 계획이다. 나는 오늘날의 건축이 내구성 이 문제가 되어 지속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는 환경 성능이 못 따르던지 기능을 상실하였을 때 지속성을 잃고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파라메트릭 계획은 계획을 가능케 계획을 하고 그래서 건축계획도 지속 가능한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건축의 선구자들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고급예술을 대중에게 널리 보급해 주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건축환경의 보급또한 유사한 맥락에서 시도되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대건축은 그 추구하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예술의 대중화나 건축의 민주화는 이루기 힘든 과제인체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바라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에 건축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고 특화 되었다. Custom Solution의 틀속의 건축설계 과정이나 시공의 과정은 건축의 비용을 높게 만들었고 이 높은 비용을 지불 할 수 있는 한정된 소수만을 위한 것이 되어왔다. 건축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건축은 획기적으로 저렴해 져야 한다. 건축이 민주화가 되어 건축의 수요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건축은 건축을 지속가능하게도 된다.
오랜시간을 걸쳐 만들어져온 토속건축을 우리는 잘 안다. 미주에 있는 흙집인 도비 하우스 또는 우리 농촌에 있던 마을들 또는 오랜 역사속에 만들어져온 대부분의 환경은 이 토속 건축인데 이들 모두는 대단히 지속가능한 건축이다. 이들이 지속가능했던 것은 사는 사람들 스스로가 건축을 하고 또 개보수를 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토속건축을 보면 자연에 가깝다. 이들건축은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었고 그래서 건축가가 없는 건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건축은 사용자들이 지불 가능한 가격으로 저렴해 져야 하고 사용자 스스로가 선택하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환경을 스스로 개보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저렴한 건축, 사용자가 스스로 만들고 개보수 할 수 있는 건축은 가능한가? 기술이 궁극적으로 기여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건축의 사용자가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하는 것이다.
건축이 Custom Solution을 떠나 범용의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되어 건축가 없는 건축이 가능해지면 건축가는 건축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로워지고 창의적인 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