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6. 18 [한겨레] 서울 신청사 관련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_서울시 신청사 조감도
8월 완공을 앞두고 가림막을 벗은 서울시신청사를 보노라면 부조화의 파열음이 들리는 듯하다. 전통과 현대의 단절,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 빚어내는 앙칼진 소리다. 어두운 잿빛 건물과 시퍼런 유리 건물이 맞부딪히고, 본관의 직선과 신관의 위협적 곡선이 대립하는 구도는 전혀 다른 음악을 함께 듣는 것 같다. 고작 이런 신청사를 지으려고 3,000억원을 쏟아 붓고 8년을 기다렸다니 개탄스럽다. 신청사는 무능하면서도 독선적인 서울시와 오만하면서 무책임한 문화재 동네가 만든 합작품으로 시정 수준과 문화재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당초 오세훈 시장이 신청사 건립을 추진한 것은 기존 청사가 매우 비좁고 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사가 서울 시내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민원인들의 불편이 컸고, 시 직원들도 각종 보고서류를 들고 오가며 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시는 당연히 건물 전체를 헐고 본청 소속 5,000여 명의 직원이 함께 입주할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시가 본관 건물을 철거하려 하자 문화재청과 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1926년 지상 3층, 지하 1층의 경성부청으로 건립돼 서울시청사로 사용된 본관 건물의 전면부와 돔, 중앙계단 등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것이었다. 서울시의 일방적 철거를 우려한 문화재청은 서둘러 2003년 6월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후 다시 사적(지정문화재)으로 가지정 했다. 등록문화재와 달리 지정문화재는 철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는 본관을 보존하되 신축 청사의 고도를 높이려 했으나 이 역시 문화재위원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인근 덕수궁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이도 저도 못하게 된 서울시는 이미 공모설계를 통해 당선된 신축안 (지상 21층, 지하 4층ㆍ연건평 약 9만㎡)을 철회한 후 재공모를 했고 2008년에 최종안(지하 5층, 지상 13층ㆍ연건평 9만788㎡)을 확정했다. 때 늦은 이야기지만 이때 본관의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여부, 신청사 규모와 효율성을 놓고 신중하고 충분히 검토했어야 옳다.
그로부터 4년 후 완공을 앞두고 그 결과물에 대해 모두가 남 탓만 하고 있다. 서울시는 문화재위원회의 옹고집 탓에 설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태생적 한계를 내세우고, 문화재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설계를 오 시장이 강행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를 디자인 했던 설계자마저 자신의 의도가 왜곡됐다며 책임을 서울시와 시공사에 떠밀고 있다.
신청사에 대한 박원순 시장의 활용방안도 잘못됐다. 박 시장은 취임후 한때 신청사에 입주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시민 활용 공간을 전체 40%까지 늘리는 쪽으로 선회했다. 시 공무원들이 모두 입주하기 부족하니 시민들에게 생색이나 내겠다는 계산이다.
언뜻 보면 시민을 위한 배려인 듯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기회비용을 무는 것이다. 출입이 공짜라고 정말 공짜가 아니다. 이러한 첨단빌딩이면 3.3㎡당 임대료가 월 10만원은 훌쩍 넘을 텐데 매달 혈세 10억 원 이상을 포기하는 셈이다. 게다가 본청 직원 5,000여명 중 신청사에 입주할 수 있는 인원은 2,205명으로 절반도 되지 않아 민원인의 불편과 직원들의 시간 허비는 여전하게 된다.
도심의 요지, 금싸라기 땅에 어설픈 문화공간과 편의시설을 만들기보다는 당초 취지에 맞춰 민원인들이 자주 찾는 부서들을 중심으로 주요 국ㆍ실을 모아 두는 게 낫다. 시청은 시청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시민을 위하고 시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이다. 시민이 원하는 건 카페와 테라스, 갤러리보다 원활하고 효율적인 시정이다. 다만 이런 방 하나는 있으면 좋겠다. 신청사가 이렇게 되기까지 의사결정 과정과 여기에 참여한 주요 공무원, 문화재위원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자료를 보관하는 방. 다시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목적도 있지만, 혹 후세에 뜻밖의 평가를 받기라도 한다면 가문의 영광이 될 테니까.